토4. 글쓰는 시간/24일. 신용경제

신용경제. 삶의 복원과 건강의 복구

진리의서재 2020. 10. 7. 15:00

 

시간이 흐르면 사람도 예술품도 나이를 먹는다. 사람은 좋은 공기를 마시고, 건강한 식사를 통해 천천히 늙을 수도 있고, 예술품은 습도와 온도 등을 잘 조정한 최적의 환경에서 보관하면 손상을 줄일 수 있지만, 사람이건 예술이건 완벽한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척추라는 조형물이 내려 앉아 협착이 되고 무릎이라는 작품이 퇴행되어 세상을 호령하던 보폭이 뒤뚱거려질 즈음 인간 예술품은 환자라는 이름으로 내원한다.

 

퇴행성이래유~”

척추가 내려 앉았다 하네요.”

 

어린 아기로 태어나서 두발로 걸으며 생명력을 발휘해 온 최상의 작품이지만, 하루하루 삶을 살아내고 세월을 이겨내면서 피로는 누적이 된다. 과적된 피로를 견뎌 내던 뼈마디의 힘이 떨어지고, 관절 이음새의 유연성이 줄어들면서 슬금슬금 누적되었던 통증이 폭발하게 된다.

 

가벼운 통증 정도야 댐이 물의 수위를 조절하는듯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서 관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여름의 긴 장마와 같은 불편한 상태의 지속은 습기 찬 옷장처럼 우리 몸을 눅진눅진하게 만든다.

 

극심하게 아프지는 않은데,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 상태를 한의학에서는 습기가 찬다 할 때의 이 질병을 일으킨다고 설명하는데, 은근한 통증과 붓고 무거움, 피로의 많은 부분이 연관된다. ‘과 연관된 증상들은 점점 몸이 무거워지면서,

뼈와 관절은 기름칠을 해야 할 것처럼 유연성을 잃어가게 된다.  

 

이러한 순간이 복구가 필요한 중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극심한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각한 질병으로 진단받지 않으니, 환자분들은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하기 쉽다. 댐이 무너질 정도로 위험한 수위는 아니지만, 적절히 조절하지 못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주변 조직들의 젖음, 무거움, 붓기 등이 나타나는 시기인데, 정확히 평가받고 치료해야 할 때다. 이 때의 적절한 치료(복구)는 다음 단계의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기에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를 넘어서면 여기저기 아프고 몸의 곳곳이 동시다발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데, 원래대로 쉽게 돌아가기 어렵다는 표현인 퇴행성”, “협착증과 같은 진단명을 받게 되면, 나이 탓, 노화 탓에 그냥 아픈 상태로 살아야죠 하는 체념과 그래도 하루 빨리 정상화되길 바라는 바람 사이에 놓이게 된다.

 

이 시기는 문제의 복구와 복원을 위해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예술품의 복원전문가가 한 작품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개월간 때로는 수년간 정성을 다하는 것에 빗댈 수 있을까? 오랜 시간 풍화되듯 서서히 무너진 몸의 틀과 구조를 바로 잡고, 원래의 모습대로 기능의 회복을 꾀하는 것은 노화라는 시간의 태엽은 되돌리며, 좀 더 젊고 건강했을 때의 기능의 회복에까지 목표로 한다는 점은 단순한 과제는 아니다.

 

예술품을 창조하는 것도 어렵지만, 복원의 과정은 창조(창작)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복원 예술가는 자신의 기술을 덧대어 마음껏 재창조하고 싶은 욕구가 있겠지만, 원작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원 재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월의 흔적까지 염두에 된 작품의 복원을 진행한다. 그들의 기술적 뛰어남과 과학적 기초와 예술혼에 깊은 영감을 받게 된다.

 

긴 세월을 견디며 무디어진 무릎은 보폭을 줄어들게 한다. 보폭이 줄어든 이에게 원래처럼 걷게 한다면 가랑이가 찢어질 수 있다. 가랑이 대신 연골이 찢어질 수도 있고, 인대에 손상이 갈 수도 있다. 그러기에, 한 번에 회춘을 목표로 하지 말고 (하려고 한다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세월을 견뎌낸 보폭에 어울리는 무릎과 다리에 부드러움이 회복되는 것이 적절한 복원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우리 몸이 아이들 장난감처럼, 블록으로 구성되었다면, 아픈 곳 뽑아내고, 새로운 관절과 뼈를 뚝딱 넣으면 된다. 하지만, 관절과 뼈도 인대와 힘줄 근육이 어우러져 기능하였고, 한 곳만 노화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차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여러 기관들이 서서히 약해진다. 그러하기에 불편하고 아픈 곳은 한 관절, 한 지점일지라도 주변의 다양한 도움의 손길(근육, 힘줄, 인대 등)이 모두 안정될 때 개선되고 회복될 수 있다.

 

너무 아파~ 언제 나아요?’라고 괴로워하시며 물으시는 환자에게, ‘세월을 돌리는 일이 힘든 일이지만, 유연함과 부드러움이 회복된다면, 삶의 무게에 무디어진 부분을 조금씩 세워 나갈 수 있습니다.’라는 말씀은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젊으실 때보다는 부족해진 힘으로 버틸 수 있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기운과 체력과 관련이 있다고까지 추가로 말씀드리려 하다가, “어르신 열심히 치료해 드릴께요~!” 라는 문장에 모두 함축해 본다. 그리고서는, 어르신의 바람인 원래대로 걷게 해줘~’라는 종착역에 도달할 수 있기를 꿈꾸면서, ‘유연함의 회복’, ‘그래도 조금은 덜 아파좀 살만 해라는 정차역으로 떠나는 여정을 시작해본다.

 

화려했던 작품이 퇴색됨을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도 그동안 이 팔로 일을 많이 했죠.’,  이 무릎도 공짜로 잘 썼고요!’ 라는 말씀으로 자신의 삶에 선물처럼 주어진 건강에 감사한 마음을 드러내시는 분들이 있다. 간간이 만나는 이런 분들의 말씀은 우리 같은 인체 복원 전문가에게는 응원과 격려가 된다.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주름살, 넉살, 넉넉한 뱃살에 감추어진 지혜는 그렇게 진료하는 우리에게까지 흘러 들어온다. 시간을 되돌리기 불가능한 미션에 도전하면서 얻게 된 지혜 덕분에, 환자의 아픔을 풀어내고, 느슨한 부분은 쪼이는 기술자에 머물지 않고, 그 분들의 삶을 조금은 원래의 예술품으로 복원시킬 수 있는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꿈꾸어 본다.

나에겐 너무도 요원한 일이지만..

신용경제 2020년 9월 기고문

 

* 김겸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를 읽던 중 영감을 받아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