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계(에덴)에서 쫓겨난 인생은 이 땅에서 살아야 한다.
무엇에 쫒기듯 살아가는지,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이고서도 미안하고 죄송은 없다.
다만 자기가 혹시 남들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잔뜩 겁먹고 있다.
가인(佳人)!
(한자)이름으로 쓰면, 아름다운 인간인데,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살인자.
가인이 겁에 질린채 하나님께 아뢴다.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언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 적 있던가?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며 기도한 적은?
에덴에서 이 땅으로 이민 온 1세대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국(에덴동산)에 대한 기억이라도 있을텐데
척박한 타지에서 생을 시작한 가인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던 추억이라도 있었을까?
구할 수 있을 때 구하지 못하고,
마음을 드릴 수 있을때 드리지 못했으며,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고 나서,
혼나는 바로 그 시점에 '주의 얼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땅으로 내 보내실 때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입혀서 보내셨다. 혹여 추울까 염려되셨는지, 비록 날씨가 춥지 않다해도 마음이 시려서 힘들까 걱정하시는 하나님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 있었다. 부모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죄인이다', '우리가 그 말씀만 어기지 않았어도.'와 같은 한탄만이 어린시절 나눈 대화의 전부는 아니었을텐데...
MR and Mrs 아담의 교육 부재였는지,
큰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동생 아벨은 온전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던 것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는 무대장치가 있었고,
아름답게 지져귀고 있을 새소리,
먹을 수 있는 곡식과 육축들이 있었다.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알았으니,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하신 그 땅에서도 -1
생명을 자녀같이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소산이 생기고 그 땅의 소산으로 감사의 예배를 여호와께 드렸다.
아벨은 양!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양으로 드렸는데,
형인 가인은 양이 아닌 곡식을 드렸다고,
그 예배를 받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데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 드릴 예배 (당시 용어로 "제사")를 이렇게 드리라고 가이드하신 부분이 있는데,
양과 염소를 드리게 하지만,
가난한 자를 위해 소제 (곡류)를 드리라고 하시니,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것 아니었을까?
가인이야기의 저자인 이상준목사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은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러면 농부로 산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말인가?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어떤 직업이든 제사 지낼 때는 무조건 양을 사서라도 피를 꼭 흘려야 한다는 것인가?
그러나 후일 신은 모세를 통해 소제(곡식 제사)와 전제(포도주 제사)도 명했잖은가. 신은 곡식도 받고 포도주도 받았다. "당신의 직업 자체가 원래부터 문제였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2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인은 '형식적으로' 예배의 형식은 취하고 있으나, 온전한 마음과 감사의 표현으로 드린 것은 아니었을까? 예배의 형식을 취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얼굴을 바라보며, 눈빛에 담긴 다정한 사랑을 보지않는다면, 과연 그것을 예배라고 할 수 있을까?
명절에 의무감으로 부모를 찾아오는 것과
감사의 마음으로 뵙는 것은
자녀를 양육한 부모라면 쉽게 구분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감사'와 '그리움'이 빠진 형식적인 '만남'에 부모도 하나님도 마음이 편치 않으신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조여온다.
가인의 이야기를 읽고있자니, "나는 그와 달리 정말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어릴때부터 늘 다니다보니,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교회에 출근도장 찍듯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지금은 비대면예배여서 클릭만 하면 예배영상이 송출되고 있지만,
비대면의 장점 - 옷도 대충 입어도 되고 - 을 십분 즐기면서, 마음도 대충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Sure, 저는 아벨같이~~~ 잘 ~~~ 드리고 있죱~"
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는데,
내 '진정'은 설교만 시작하면 졸고 있는 내 몸의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가?
(요즘은 쫌 안 잡니다만요~ ^^)
생각해보게 된다.
이 가인 나쁜 놈! 이라고만 생각하다가,
바로 그 가인이 나인 것을
아름답다 이름지어줬으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인 아우를 죽인 사람과
너무도 비슷한 실루엣을 가졌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
다시
또 다시
또또 다시
또.또.또 다시
돌이키고, 일어나서 여호와께 돌아가자.
2021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살다가,
혼 날때가 되어서야 하나님의 사랑의 얼굴빛이 없이 사는 공포에 떨지말고,
미리미리 하나님의 사랑의 눈빛을 바라보자.
그 눈빛에서 은혜를 발견한 노아처럼...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 (창 6.8. KJV)
하나님의 눈빛에 비추인 '우리를 향하신 사랑의 마음'을 읽은 사람!
그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셔서 생명의 길을 다시금 열어주신다.
참 지독히도 말 안듣는 도망간 조각품을 -3
또 다시 품으시고 온기로 보듬어 주시는
하나님이란 분은 도대체 왜 이리도 우리를 사랑할까?
하나님이 빚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호흡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한 걸음은 더
그 마음에 닿아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로 얼릉 달려가지도 못함을 아시고,
무거워진 몸과 코끼리 다리를 고려하여
바로 우리 심령에까지 찾아오신 주님을
활짝 문 열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무리 거리두기 2.5단계여도
예수님과 나는 두 사람이니 괜찮다.
생명의 말씀을 먹여주시는 것이니 식당에 갈 필요도, 배달이 필요치도 않다.
교과서만 펴면 된다.
하늘천 따지,
아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4
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
1. 창세기 3장 18절
2. 이상준 저, <가인이야기> 두란노서원.
3. friday-8pm-soon.tistory.com/56 에 이어지는 글 입니다. ^^
4. 창세기 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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