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내가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인가?
부모와 스승의 도우심과 이끄심의 손을 잘 잡고 오다가,
어디서 손을 놓친 것인가?
내 삶의 길을 잃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이렇게
길을 잃었을 때 떠올려지는 시가 있다.
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중략)...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작가나 시인은 잃은 것을 찾으려는 사람이다.
이윤기 선생은 신화에서
윤동주 형님은 시에서
치매가 건망과 다른 것은 '잊어버렸다는 병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아! 차 키를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렸다는 건망
내가 뭘 어디에 뒀는지 잊어 버렸다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은 치매.
치매는 뇌세포, 흑질에 프라크가 낀 것으로 인한 기능의 상실, 기억의 죽음.
잃어버린 원류를 찾아가려는 이윤기,
무엇을 어디 잃었는지 몰라 계속 더듬으며 길을 나아가는 윤동주
그들은 결국 길을 찾은 것일까?
동주형님이 혹시 계시록을 읽고서 이 시를 쓴 건 아닌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성경의 마지막 책. 계시록의 초반부에는 7개의 교회에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온다.
에베소 교회에는 이런 칭찬으로 시작한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이건 대박 칭찬이다.
섦의 행동과 수고, 참고 견딘 인내에 대한 인정
진리를 훼손하려는 자의 거짓을 드러냄으로 진리를 지켰다는 칭찬이다.
이 정도 칭찬받기 어디 쉽겠는가?
그런데, 이 칭찬 뒤에 바로 야단을 맞는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
그렇게 수고하고 인내했으나, 처음의 열정, 애정, 그 마음을 잃어버렸음을 지적받는다.
이 정도 했으면 됐지 하며 사명을 잃은 지점.
열심히 진료했고,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줬으며,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일상이 되는 어느 날,
환자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짐에 감사하고,
또 한 환자가 조금이라도 좋아져서 밝은 얼굴로 인사해줘서 고맙고,
또 더 좋아질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여, 더 나은 삶으로 도와줘서 만족스러운,
그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때의 따뜻한 지점과는 달리,
그 마음과는 상관없이 형식적으로 진료하고,
오늘의 삶을 환자의 숫자와 매출로 결론지으려는
차가운 오늘에 대한 판단을
' 처음 사랑을 버렸다' 고 하신다.
충격이다. 버린 것 정도는 아니라고 항변하고,
어느 정도의 열정, 어느정도의 진지함, 어느정도의 최선을 다하는 하루였음을 항변하고 싶지만,
'처음으로 규정지어 주시는, 그 사랑'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버렸다!
사랑을 버셨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그래서, 동주 형님이 그리도 찾았던가.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를..
나라를 왜 어떻게 우짜다 잃어버렸는지
시인으로의 삶, 신앙인으로서의 삶, 나라 잃은 백성으로의 삶에서 잃은 것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그리고, 걷고 걸었던가.
괴테는 걸으면서 철학을 정리했지만,
동주는 그리 걸으면서 그 지점을 찾고 싶었던가.
우리의 주장을 포장하는 능력이 탁월한 이때에,
마케팅이 본질보다 너무도 앞설 수 있는 현재에,
말발로 최선보다 더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는 오늘,
나는 무엇을 잊고, 어떤 것을 잃었나?
그 지점을 찾아야 한다.
되돌아 찾기 어려우면, 그 열정을 주신 분, 그 능력을 주신 분, 그 사랑을 주신 분께 다시 그 사랑을 부탁해야 한다.
내가 탕자이지 않는가.
아니 탕자의 형님인가?
좋은 지식, 좋은 길,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염소 한 마리 없음으로 불평하고,
좀 더 높지 않은 수가,
좀 더 배려받지 않는 상황,
좀 더 존중받지 못하는 그 지점에서,
감사와 사랑을 잃어버리고,
분노와 짜증에 자리를 내어줬던 그 지점.
그 지점으로 돌아가서, 고쳐주시길 기도해 본다.
그런 내 모습으로 상처 받았을 분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시길 기도해본다.
또 영원히 그러지 않기 어렵지만,
그런 상황이 오면, 내 촛불 같은 사랑으로는 어렵지만,
태양 같은 당신의 사랑으로 그 상황 또한 이겨낼 수 있게 해달라고 때 써본다.
"찾았습니다.
그 길을
이제는 잃어버리지 않게
인도해주소서... "
라고 맺으면 어떨까요?라고..
동주 형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다면,
형님 블로그에 이렇게 댓글을 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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