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8. 순예배의 시간

삶의 나침반, 나를 인도하는...

진리의서재 2020. 10. 9. 02:18

누구나 학문이나 삶에 나침반이 필요하다.

항해의 시대는 아니지만, 인생을 항해로 비유하자면, 삶의 매 순간 나침반이 필요하다.

사막을 건너는 사람에게 경구 중 하나는

" 모래로 만들어진 길을 기억하지 마라, 바람이 불면 길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늘의 별이나, 나침반만 의지해서 나아가라"이다.

 

"내겐 하나의 나침반이 필요했다."  조희봉. 전작 주의자의 꿈 34쪽.

내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일단 인정하고 나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그 길을 아는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고 그들의 길을 주 삼아 따라가면 내가 처음 길을 잃어버린 자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나는 이윤기와 안정효라는 아주 유능한 셀파를 찾을 수 있었다.

 

긴 난독증의 시대를 벗어나게 해 준 책 중 하나인 조희봉 님의 책

그의 안내대로 이윤기 선생과 안정효 선생의 글을 따라갔다. 

나도 좋아하는 글들 신화, 시, 문학이라는 산을 정상은 아니어도 둘레길 정도라도 걷고 싶었고,

성경이라는 산을 오르고 싶었다.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
하고 싶은 말을 말을 글로 잘 풀어내는 사람의 글을 읽을 때는 늘 내가 작아진다.   
류현진의 공 앞에 삼진 당하는 타자의 민망함 같은 것이다.
꼼짝도 못 하고 그냥 감상한다.
그냥 아름답다! 웃긴다! 어이 었다! 치열하다! 와 같은 표현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 '허허~' 정도의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을 때가 많다.

 

그런 글들을 읽다가 펜을 꺾은 - 사실 연필을 깍지도 않았지만 - 나로서는,

글을 잘 쓰는 것도, 책을 낼 수 있다는 것도 꿈꾸지 않았다.

아니 꿈만 꿨다.

하지만 800권을 읽으니 책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어떤 분의 글처럼,
나도 좋은 글을 통해 숨을 쉬는 이 기쁨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수 있는 경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높은 산은 내 삶에 불가능하니,
뒷동산 정도라도....

 

*** 다이달로스의 조카. 탈로스 

다이달로스. 
그리스 신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 다이달로스는 생경한 이름이다. 

그리스의 영웅 페르세우스가 아테네 소년 소녀가 재물로 바쳐지는 것을 참지 못해 괴물을 죽이러 들어가는 미궁을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이다. 미로를 탈출할 수 있게 미노스 왕의 딸인 아드리아네의 실타래를 지니고 다시 나오는 멋진 드라마의 미궁의 설계자.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토리의 배경을 만든 건축가요 공학자인 사나이.

또한 하늘을 날다가 너무 높게 날아서 태양의 열기에 날개로 부착한 밀렵이 떨어져서 사망한 이카루스. 

그 이카루스의 아버지로,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자신의 몸에 붙여 미궁에서의 탈출을 감행한 쇼생크 탈출의 그리스 버전의 주인공이자 제작자이다.

이카루스의 아버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공학기술 예술가로서의 뛰어남은 

소크라테스가 그의 자손인 것이 자랑스러워할 정도라니 그 시절을 뜨겁게 달궜던 이야기의 스토리텔러이자 기술감독이며 자신이 스스로 주인공이다. 

 

이 다이달로스의 삶의 무대는 크게 아테네에서의 삶, 

미궁과 이카루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크레타섬에서의 삶,

그 이후의 삶으로 나눌 수 있다.  

 

오늘은 아테네에서 있었던 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러한 천재에게도 라이벌이 있었다.

사실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린 12살의 조카다.  

여동생의 아들로, 여동생의 부탁으로 함께 작업을 하고 가르치는 피붙이다.

그런 어린 조카가 뛰어난 활약을 하기 시작한다. 

물고기의 등뼈 모양을 보고 창의력을 발휘하여 톱을 만들고,  

또한 철조각을 이용해서 나침반을 만든다. 

이런 발명이 있었다면, 스승으로서 삼촌으로서 기뻐해야 마땅한 일이다.

라이벌이라기보다, 가족이지 않은가. 

고대의 이야기에서는 가족이라도, 자신의 입지에 방해가 되면 제거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그래도 어린 조카인데...

 

영재 발명가 탈로스는 

스승이자 삼촌의 질투로 발명의 기쁨을 누리고 축하받기는 커녕 아크로폴리스에서 떨어져 목숨을 읽게 된다.

뺑소니 사고를 위장한 삼촌이 일으킨 추락사고로 

나침반을 발명했지만, 
삶과 예술가로서의 나침반 역할을 기대했던,

삼촌의 잘못된 방향 제시,

아니 방향을 제시하지 않음, 

아예 방향 제시 기능을 OFF 시킴을 당하고

뺑소니 사고의 피해자가 된다. 

 

엄마의 오빠. 
엄마로서도 오빠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었겠는가

아들을 잘 이끌어주길 오빠에게 부탁했건만, 

나침반 역할을 잘하지 못한 사나이, 다이달로스.

뛰어난 기술은 가졌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예표로 할 정도의 다방면 능력자이지만,

조카를 살해한 살인범이 된다.

 

나침반이 한 방향을 바라보듯,
잘 도와주는 것 한 방향만 바라보면 되는데, 

그렇게도 그게 어려운가 보다.  

뛰어난 성취를 하는 조카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계속 움직이고 흔들리는 마음때문이렸다.

잠시 멈추어 마음의 방향을 바르게 잡아나가는 것이 그리도 힘들었나 보다.  

 

*** 예수님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나침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예수님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당신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 계시듯,

우리가 당신 안아 계시길 원한다.

끊임없이 하늘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가득한 눈동자를 보게 하신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바라봐야 할 곳을 바라보게 하신다.

33년간의 짧은 삶을 통해서 죽음을 통해서 다시 삶을 통해서,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의 회복을 위한 놀라운 계획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려 하셨다.

 

그렇게도 견고한 나침반을 향해 가다가도 넘어지는 우리를 위해

쉘파를 보내 주셨다.

성령 하나님!

우리가 그렇게 잘 까먹고 잊어버리니, 아예

마음에 심어주셨다.

성령 하나님께 마음의 자리를 내어 드리기만 하면,

예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고, 

예수님이 바라보신 그 방향, 

하나님의 사랑을 역시 바라보게 도우신다.

이정표를 보여주시고,

또 혹여 못 볼까 봐 마음 안에서 내 혼과 접속하여, 저 넓은 하나님의 사랑에 접속하게 하신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수 있게 말이다.

우리 힘으로 드릴 수는 없는 그 예배

우리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곳

그 영광스러운 보좌를 바라보게 하신다.

이 땅에서의 항해를 할 때,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고플 때 바람이 도와주지 못하는 것처럼, 

망망대해에 있다고 여길 때 있지만, 

그 순간에도 아기 새를 품어주시듯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의 품 안에 있음을 바라보게 하신다.

 

나침반 되신 예수님께

탈로스 같은 뛰어나지도 않은 삶을 품어주시고 인도해주시는
놀라운 이끄심에 감사를 드립니다.